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시간 음반 (문단 편집) === 연구와 개발 === 직경 25cm SP가 한 면당 3분, 30cm SP도 4분 30초를 넘기기 힘들던 수록 시간에 대한 불만은 이미 SP가 한창 장사가 될 무렵부터 있어 왔다. 이 때문에 수록 시간을 늘이기 위해 온갖 개량과 실험이 행해졌는데, 이들 중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. 그나마 1931년에 [[미국]]의 RCA 빅터에서 음반 회전수를 종래의 78 rpm에서 33 1/3 rpm으로 떨어뜨려 한 면당 15분 정도 녹음할 수 있는 디스크를 내놓아 화제가 되었는데, 이것도 재질의 한계와 재생 시간 연장으로 인해 녹음과 재생할 수 있는 음역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음질이 떨어져 1년을 못 넘기고 잊혔다. 이 실패를 직접 겪은 당시 RCA 빅터 사장 에드워드 월러스타인(Edward George Wallerstein, 1891~1970)은 결국 퇴사해 [[컬럼비아 레코드]](Columbia Records)로 이직했는데, 그러면서도 긴 재생 시간을 갖고 있는 레코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. 당시 컬럼비아 레코드의 모회사였던 [[CBS(미국 방송)|CBS]]의 기술 연구소에도 월러스타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전자 공학자 피터 골드마크(Peter Carl Goldmark, 1906~1977)가 있었는데, 골드마크는 월러스타인에게 연구 개발을 승인해 달라고 했고 월러스타인도 바로 결재해 1941년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. 하지만 이 계획이 시작될 무렵 [[태평양 전쟁]]이 발발해 미국이 [[제2차 세계대전]]에 참전하면서 연구가 잠시 중단되었으나 그나마 전세가 호전되고 [[연합군]]의 승리가 확실하게 된 1945년부터 다시 제대로 돌아가게 되었는데, 이 기간 동안 군수 산업과 연계된 중화학 공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. 다만 입안자인 골드마크는 이 시기에 컬러 [[텔레비전]] 개발 부서로 옮겨갔기 때문에, 월러스타인은 그때 막 [[제너럴 일렉트릭]]을 퇴사한 기술자 빌 바흐만(William Stephen Bachman Jr, 1908~1996)을 스카웃해 연구 개발을 재개했다. 바흐만은 전쟁 중 생산과 이용이 활성화된 새로운 고분자 물질인 [[플라스틱]]에 주목했는데, 플라스틱은 기존에 레코드의 제조에 많이 쓰인 일종의 염료 물질인 [[셸락]]보다 더 유연하고 가벼웠다. 그리고 고분자 물질이니만큼 좀 더 세밀하고 좁은 소릿골(Groove)을 새겨 넣어도 될 만큼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이걸로 계속 실험을 진행했다. 특히 [[폴리염화 비닐|염화 비닐 수지(PVC)]]가 적합하다고 여겨졌고, 이와 병행해 정밀하게 소릿골을 새겨 넣을 수 있는 프레스 기기와 좀 더 가벼운 픽업의 개발도 병행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